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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9 네 존재는 위로 그 자체



    네 존재는 위로 그 자체

    “뱃속에서 종양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들도 있대.”

    “그래?”

     

    퇴근하면 아내는 늘 하루 종일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이야기한다. 

    주로 아이에 관련한 것인데 이날은 아내가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카카오 브런치에서 본 것을 전해줬다.

     

    그분에게는 6살, 두 돌 된 딸이 있는데 딸이 새벽녘에 깨서 울음을 터트려 안아줬더니 숨을 잘 쉬지 못했고 

    이내 숨을 거뒀다고 한다. 급히 응급실로 갔지만 ‘사인 미상’.

     

    아이는 임신  26주차에 목 부위에 4cm 이상의 림프관종이 발견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기도를 막지 않아 무사히 자연분만 끝에 

    태어나 모두를 기쁘게 했다는 장한 아이. 혀 밑에 2개의 종양이 더 발견돼 태어난 지 한 달 무렵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췄다는, 말만 들어도 사랑스러운 그 아이는 두 돌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나라로 갔다. 올해 초의 일이다.

     

    큰 슬픔에 빠진 아이의 엄마는 ‘너와 함께 해보고 싶었던 것’이란 제목으로 소소한 19가지를 나열한 글을 올렸고, 아내는 그 글에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아이도 엄마랑 하고 싶은 게 참 많았을 거예요. 엄마라고 크게 부르며 달려와 빙글빙글 안기기, ‘엄마 사랑해’라고 써서 

    선물하기, 종이접기를 배워서 엄마에게 꽃 접어주기 등등. 그거 안 잊어버리고 이다음에 엄마랑 만나면 하려고 또박또박 글씨를 쓰는 연습도 하고 

    즐겁게 잘 지내고 있을 거예요. 열심히 살다, 후회 없이 살다가 훗날 만나세요. 아마 아이가 이만큼 써놓은 거 다 하자고, 같이 하자고 조를 거 같아요. 

    하고 싶은 거, 해주고 싶은 거 못 하시는 게 아니라 잠시 미루어 둔 거니까. 꼭 힘내세요.”

     

    그리고 한두 달쯤 잊고 지냈는데 댓글 알림이 와서 보니 그 엄마의 대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제가 이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눈물이 납니다. 다음에 만나면 꼭 같이 해야겠어요.”

     

    이야기를 전해 듣는 내 마음도 뭉클했다.

     

    부모만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은 게 아니라, 아이도 부모에게 주고 싶은 것이 참 많다. 

    철없이 레고 놀이를 하는 천진한 아들을 문득 바라봤다. 정말 그랬다. 아이를 키워보니 그랬다.

     

    아이는 내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함께해 줬고, 순수한 언어와 몸짓으로 위로해 그 따스함에 때론 웃고, 때론 울며 치유를 받았다. 

    아이는 엄마가 상을 받지 못해 울적해 할 때면 색종이로 색색깔 꽃을 접고, 접고, 접어, 이어 붙인 제 키만 한 트로피를 만들어 ‘대상’이라며 선물하기도 했다.

     

    액세서리가 널려있어서 아내에게 잔소리를 했더니, 아이는 엄마에게 레고로 ‘보석 상자’를 만들어줬다. 

    엄마는 아빠와 제 생일에 고기가 많이 든 미역국을 끓여준다며, 자랑하다가도 문득 “엄마는 엄마 생일에 엄마가 요리해야 되네”라고 말하더니 미역국을 끓이는 방법을 묻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부모의 사랑은 한없이 깊고 끝없이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보니 그렇지 않다. 부모는 때론 욕심을 부린다. 때론 조건이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무조건적이다. 부모는 아이를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이에 반해 아이는 도리어 부모에게 자신이 가진 많은 것을 조건 없이 내어주려고 한다. 그 조건 없는 사랑이, 때 묻지 않은 언어로 표현하는 위로가, 세상을 사는 힘이 되어 준다.

     

    서로에게 서로가 있는 한,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한 결코 혼자가 될 수 없다. 부모와 아이, 아이와 부모. 

    우리는 한 팀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큰 위로이며, 사랑이고, 재산이다.

     

    “어깨에 기대봐. 진짜 요만한데. 진짜 편해. 진짜 너무 든든해.”

     

    아내의 말에 아이의 어깨에 머릴 기대봤다. 한 뼘 밖에 안 되는 

    작고 여린 아이의 어깨에 묵직한 내 머리가 얹어질까 싶지만, 살포시 기대어진다. 

    마음이 거짓말처럼 편안해진다. 아내의 말을 알겠다. 든든하고 따뜻한 내 삶이 여기 있다.






    2023.08.29

  • 더블하트 러브레터
    Vol 8. 아침의 모양




    “아침이다, 아침이야!” 창밖으로 들어오는 엷은 빛을 확인한 순간, 네 살 건희는 벌떡 일어나 말했다.

    “엄마, 아침이에요!” 마치 머리맡에 놓인, 생각지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신이 나서 외치는 건희의 모습이 신기하고 귀여웠다. 건희는 아직, 오늘과 내일이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나 보다. 

    아마 태초의 인간도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이 왔을 때, 기적처럼 기뻐하지 않았을까. 

     

    머릿속에 ‘고인돌 가족’ 만화가 떠올랐다. 나는 일기장 한 쪽에 원시인 복장을 한 건희를 그려놓고 하하하 웃었다. 

    그런데 건희의 신나는 기상이 계속 이어지자,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조금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웃으며 아침을 시작한 적이 있었던가.

     

    우선 나는 건희처럼 아침을 창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밤새 내 곁에 누워있던 핸드폰 화면을 톡톡 두드려 정확한 숫자로 표기된 아침을 봤다. 

    ‘아, 벌써.’ 라는 신음 같은 혼잣말이 튀어나오고, 이어서 마음속으로 5분만을 외치다가, 겨우 이불에서 빠져나오면, 얼굴에 붙은 어제의 피로를 떼어내듯 세수를 했다. 

     

    거울에 비친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오늘 뭐해야 하더라?’를 묻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더 이상 네 살 아이처럼 새로운 하루가 주어진 것에 놀라지도 감사하지도 않았다. 

    매일 밤, 잠자리에 누울 때, 다음 날이 또 올 거라는 사실을 의심한 적도 없었다. 아니 내일뿐인가, 나에게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시간들. 

    일주일 후, 한 달 후, 몇 달 후의 일정도 척척 잡아가며 살고 있다. 이렇게 당연해도 될까. 나는 선물을 받고도 고마워 할 줄 모르는 무례한 사람이 돼버린 건 아닐까. 

     

    그러다 어느 평범한 날, 사건이 터졌다. 

     

    하루 종일 별 탈 없이 잘 놀던 건희에게 미열이 느껴질 때만해도, ‘아, 또 감기구나. 또 열이 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는 대다수의 엄마가 그렇듯, 열과 감기와 병원행차 같은 것들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별일 아니었고, 그만하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래서 미열 정도에는 더 이상 호들갑을 떨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이미 저녁이라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집에서 열 체크를 하며 지켜보다 내일 아침에나 가볼 작정이었다. 

    건희는 이날 평소보다 쉽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 만에 엄청난 열과 함께 숨을 쉬지 않았다. 

    그 5분. 119에 신고하고 구급차가 오는 5분 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불이 꺼진 건희의 얼굴은 언젠가 보았던 도자기 인형보다도 더 하얗게, 핏기가 싹 빠져있었다. 

     

    남편과 나는 계속 건희야, 건희야!!! 이름을 부르고 흔들며 소리 쳤지만, 몸은 힘없이 축 늘어져서 이미 생명이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건희랑 깔깔거리며 웃고, 손을 맞잡고 걸으며 흥얼거리던 순간들, 지겹게 하는 술래잡기나 아주 사소하고 반복되던 날들이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았다. 

    5분 후, 구급차가 제때 도착했다. 아이를 받아 줄 응급실도 운 좋게 찾았다. 늦지 않게 모든 조치가 이루어졌다. 몇 가지 검사를 받고 며칠 더 입원해야 했지만, 

    다시 위급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낮이고 밤이고 잠시 눈을 떼었다 볼 때면, 건희의 배 부분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지를 체크했다. 

    새벽에는 불쑥 눈이 떠져서 아이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고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해야 다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랬다. 삶은 무한정 이어지지 않는다. 아침 역시 당연하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었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창부터 연다. 오늘은 안개가 꼈네, 오늘은 새소리가 많이 들리네, 오늘은 벌써 해가 떴네, 덥겠다.

     

    아침은 매일 다르고, 나는 새 아침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세수를 하고 나서 거울 속에 내 얼굴을 보며 일부러 씩 웃는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보자. 말하듯이, 커피를 정성들여 내리고, 미리 들고나갈 가방을 싸두고, 

    시간이 남으면 가족들이 일어날 때까지 스트레칭도 하고 책도 읽는다. 나는 아침을 썩 괜찮게 받는 사람이 되고 있다.

     

    반면 여섯 살이 된 건희는 이제 아침에 신나게 뛰지 않는다.

    아침을 흘깃 바라본다. 살짝 확인하고 재빨리 눈을 꾹 감는다. 못 본 척 더 잠을 자려는 모습에 나는 또 큭큭 웃음이 난다. 

    몇 년 후에는 엄마 5분만을 외치고, 알람을 여러 개 맞추며,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일으킬 아침도 오겠지. 

    그러면 나는 다시 너에게 배운, 아침을 맞이하는 방법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한다.









    2023.07.19

  • 더블하트 러브레터
    Vol 7. 엄마 안전벨트



    엄마가 ‘너 어렸을 때, 그때 기억나?’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신기할 정도로 내 기억에는 없다. 어째서 내가 몸으로 살아낸 시간들이 이렇게 쉽게 지워질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다보면 얼기설기 구멍 난 기억의 이불을 수선하는 기분이 된다. 나는 그런 어린이였구나, 어릴 때 그런 면이 있었네, 하고. 

    또 반대로 나는 분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엄마에게는 신기할 정도로 없다. 일곱 살 무렵, 엄마와 동생의 손을 잡고 만원 전철을 탔던 날처럼.

     

    그날은 아마 퇴근시간을 걸쳐 이동한 탓인지 지하철에 사람이 많았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조금 더 옆 사람과 가까워지는 듯했고, 조금 더 숨쉬기 불편해졌다. 

    그러다 순식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태워도 되는 건가 걱정될 정도의 사람이 가득 찼다, 언젠가 길에서 봤던 쥐처럼 납작해질까봐 무서웠다. 금세 눈앞은 앞사람의 까만 옷 색깔만 보였다. 

    사람들은 “어어어, 밀지 말아요.” 소리만 냈다. 그때 찢어지는 듯한, 날것의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러다 우리 애들 다 죽어요!!! 그만 밀어요.”

     

    고함을 치는 사람은 엄마였다. 우리 남매가 어른들 사이에서 더는 찌그러지지 않도록, 지하철 봉을 한손으로 잡고 한손으로 우리를 안으면서 정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엄마의 작고 연약한 체구가, 아주 단단한 방패처럼 느껴졌다. 숨이 쉬어졌다. 위험에서 안전벨트가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 안전벨트. 돌이켜보면 엄마가 억척스럽게 힘을 내고, 평소와 다르게 소리를 지르는 순간은, 우리를 지킬 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위험을 감지하고 보호하는 엄마 사자처럼.

     

    며칠 전, 건희와 시내버스를 탔을 때였다. 자리에 앉은 건희가 두리번거리다가 왜 버스에는 안전벨트가 없는지 물어봤다. 

    책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차에 타면 안전벨트를 매야한다고 교육을 받은 터라, 버스에 안전벨트가 없는 것이 영 이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안전벨트가 있는 버스도 있지만, 마을 안을 운행하는 버스들은 승객들이 금방 내리는 경우가 많아서 없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 사이에도 버스는 덜컹여서, 

    어른보다 가벼운 건희의 몸이 앞뒤로 크게 흔들렸다. 어쩌면 건희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라, 

    안한 마음에 던진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는 내 팔을 건희 몸 앞에 안전벨트처럼 척 둘렀다. 

     

    "우리 금방 내릴 거야. 엄마가 그때까지 건희 안전벨트 해줄게. 걱정 마."

     

    내 얼굴과 팔을 가만히 번갈아 보던 건희가, 

     

    "엄마도 안전벨트가 없잖아요. 그럼 나는 엄마 안전벨트 해줄게요." 라며 작은 팔로 내 몸을 똑같이 감쌌다. 

    건희의 짧은 팔은 내 몸을 다 감싸지 못하고 절반만 와서도 꿋꿋하게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몸에 팔을 두른 채로 창밖을 구경하며, 세 정거장을 지났다. 나른한 햇살이 지고 있는 오후였다.

     

    건희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엄마의 안전벨트였던 순간도 분명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옛날에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 있었어요? 나 키우면서 감동 받았던 순간이나 힘이 되었던 적.” 

     

    “글쎄, 갑자기 물어보니까… 모르겠네.” 난감한 목소리로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엄마가 말했다. 

    “아, 맞다. 그때 너무 어려서 네가 기억하려나? 내가 엄청 아팠던 적이 있었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서 끙끙 거리고 있는데, 세상에 그 쪼그만 애기가 나한테 와서 자기 우유를 안 먹고 내미는 거야. 엄마 먹으라고. 그때 좀 놀라고 감동했지.”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그때 기억나? 로 시작하는 얘기들은.

     

    그래도 그때 그 꼬마가 아픈 엄마 곁을 지켜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공백을 우리가 서로 메꿔주며, 잠시 마음을 덥힐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건희와 잡은 손을 더 꼭 쥐었다. 내가 건희에게 건희가 나에게, 내가 엄마에게 엄마가 나에게 우리가 서로에게 안전벨트가 되어주는 거구나. 

    앞으로 살다보면 엄마라는 역할이 더 무겁게 느껴지고 겁이 나는 순간도 있겠지만, 계속 이렇게 살아가면 될 것 같아 씩씩한 마음이 되었다.









    2023.06.16

  • 더블하트 러브레터
    Vol 6.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너의 처음, 엄마가 기억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너의 처음, 엄마가 기억해 줄게




    세상에나.

     

    이제 와서 겨우 하는 말이지만, 네가 얼마나 외계인 같은 모습으로 엄마를 처음 만났는지 그 때 엄마의 생경함은 지금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너의 아빠는 그런 너의 얼굴을 보고도, 코가 아빠를 닮았고 눈매는 엄마를 닮았다며 유전자의 흔적을 잘도 찾아냈지. 

    9개월 동안 엄마 뱃속에서 버티다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이기도 하기에, 비록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네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 이후로도 엄마는 너의 모든 처음을 가슴 벅차게 기억하고자 노력했다.

     

    너는 며칠 동안 감고 있던 눈을 드디어 떴고, 

    방긋 웃기만 하던 어느 날 ‘엄마’라는 단어를 처음 말했다. 

    하루 종일 틀어 놓은 노래를 언젠가부터 함께 웅얼거렸고, 천장을 보며 누워 있다가 어느 순간 몸을 뒤집었다. 

    TV를 틀어 놓으면, 보겠다며 열심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보행기를 밀며 걷던 네가 어느 순간 보행기에서 손을 놓았을 때, 

    엄마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고무장갑을 벗으며 소리를 질렀다. 

    누가 들으면 로또 1등이라도 당첨된 것 같은 외침이었을 거야.

     

    앞으로의 너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지 의문이 드는 너의 모든 ‘처음’이, 엄마에게는 지금도 너무 생생하다. 

    마치, 정작 너는 알지도 못하는 너의 비밀을 엄마만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네가 그 작은 몸짓으로 얼마나 열심히 무언가를 해내려고 했는지, 엄마는 계속 지켜봤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하는 행동들도 마치 천 만 시간의 법칙이 필요한 것 마냥 반복하고 또 반복했지. 

     

    너는 누워서 한 쪽 다리를 높이 들고는 휘이 저으며 반동으로 몸을 뒤집었는데, 

    실제로 뒤집기에 성공할 때까지 며칠 동안 얼마나 여러 번 다리를 흔들던지 그 꾸준함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버튼을 누르며 놀던 보행기를 잡고 일어서 볼 생각을 한 것도 기특했다. “여기를 잡고 걸어보는 거야.” 라고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미끄러지는 바퀴에 몸을 맡기고 슬슬 발을 옮기다니, 얼마나 신기했는지. 

    이렇게 작은 행동 마저도, 너는 엄마에게 “어머, 얘 천재 아니야?” 하는 야무진 꿈을 꾸게 만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힘을 조절하는 게 어려워 보였다. 보행기가 저 앞으로 먼저 가고 너는 그 속도에 맞춰 걷지 못해 넘어지기도 했지만, 

    너는 계속 반복했고, 보행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와 맞췄고, 결국에는 보행기를 놓고도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엄마는 그런 너의 옆에서, 때로는 도와주면서 때로는 바라만 보면서 응원했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너의 모든 ‘처음’을 만들기 위해 네가 얼마나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지를. 

    아무도 너에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너 스스로 그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지를. 

     

    너무 어린 시절의 일이라 이런 너의 힘을 너가 잊을까 봐, 엄마라도 그 힘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도 엄마는 너를 열심히 관찰하고 응원하려 한다. 

     

    그래서 말이지. 나중에 네가 성인이 되어서 무언가 힘든 일을 겪게 될 때,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당연히 네 안에 있지만 

    너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엄마한테도 기대줬으면 좋겠다.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늘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2023.05.30

  • 더블하트 러브레터
    Vol.5 오늘도 묻는다, 너는 어떤 아이니?



    오늘도 묻는다, 너는 어떤 아이니?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다고 하는데, 

    주말의 어린이병원은 매일 북새통이다. 

    아이를 들고 업고 병원을 찾은 부모들은 근심 가득한 표정이다. 우리 부부도 그 중 한 무리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사실은 열이 펄펄 나는) 

    아이를 데리고 별 수 없이 주말 북적거리는 병원을 찾았다. 

     

    대기 시간이 30분을 넘어서고, 지루해진 나머지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몰래 살펴본다. 

    아이들의 모습은 다 제각각이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울면서 떼를 쓰는 아이, 

    씩씩하게 본인 발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씩씩하게 나오는 아이,  

    대기실을 자동차 장난감을 들고 돌아다니며 또래가 다 자기 친구인양 간섭하는 아이…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저 아이는 좀 예민한가 보다, 저 아이는 무던한가 보다, 저 아이는 사회성이 참 좋네? 

    그러다 정신이 퍼뜩 든다. 남들이 보기엔 누구보다 ‘순한 아이’인 우리 딸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복잡한 속내를 갖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 단어로 내 아이를 규정짓는다는 어려움

     

    “아주 순하네. 효녀네, 효녀.”

     

    두 돌이 되기 전, 우리 아기는 누가 보더라도 무던한 아이였다. 

    기저귀를 하던 시절, 한 번은 카시트에서 대변을 봤다. 

    그런데 멀뚱멀뚱, 집에 도착해서야 발견했다. 

    깜짝 놀란 부모님과는 달리 ‘뭐 그런걸 가지고 놀라느냐’는 표정이었다. 

    한 번은 자다가도 기저귀에 대변을 봤다. 

    그러고도 잘 자더라… 여튼 그랬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이런 순한 아이가 어디있느냐”고 했다.

     

    그런데 차츰 말을 하고, 자기 표현을 잘 하기 시작한 뒤 깨닫게 됐다. 

    우리 아이는 절대 순하기만 한 아이는 아니었다. 

    참을성이 남들보다 좋긴 하지만, 속으로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결국은 참고 참다가 저녁 즈음이 되면 한 번에 울분(?)을 쏟아냈다. 

    며칠 전 자기를 속상하게 했던 행동을 되새김질하며 울고 불고 난리를 치기도 했다. 

    누가 봐도 ‘무던하고 순한 아이’가 아니었다. 

     

    부모들에게 ‘아이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하면 아마 이런 식이 아닐까 한다. 

     

    “그… 참을성이 좋아요. 좋은데, 마음속에 담아두고 한번 폭발하면 잘 달래지지 않아요. 

    물론 어찌 어찌 달랜 다음 조근조근 설명해주면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 아이죠. 

    그치만 몸이 피곤하면 그런 거 없고 온갖 짜증을 부리는 아이고요…”  

     

    그렇다. 

    어떤 아이든 한 단어로 성격을 정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월령이 늘어갈 수록 아이의 마음도 온갖 감정으로 수 많은 가지를 뻗어 나가고 있는 것 아닐까.

     

     

    아동 심리 책을 8권이나 산건 자랑이 아닙니다

     

    여느 부모가 그랬듯 우리도 아이가 태어난 뒤 온갖 육아 책을 수집했다. 

    처음에는 목욕 시키는 법, 수유하는 법, 트름 시키는 법, 재우는 법, 그야말로 생존과 관련된 이야기를 탐독했다. 

    그러다 차츰 아이의 마음에 대한 탐구로 옮겨 갔다. 

     

    생각난 김에 그동안 사 놓은 육아 관련 책을 세어보니 모두 12권. 

    그 중 ‘몸’에 대한 책이 4권이었지만 ‘마음’에 대한 책은 8권이었다. 

    그 만큼 아이의 마음이 궁금했다. 

    도대체 너는 어떤 아이니? 네가 너로써 건강한 마음으로 잘 자랄 수 있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니? 

    지금도 수도 없이 마음속으로 되묻고 되묻는다.

     

    어쩌다가 유아 심리 관련 서적을 8권이나 사게 됐을까? 

    돌이켜 보면 이렇다. 보통 18개월을 전후로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24개월에서 36개월 사이에 아이의 성격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반면 부모들은 이 시기 정체성의 대혼란을 겪는다. 

    아이에게 “싫어” “안해” “아니야” 삼단 콤보를 맞고 정신이 어질해져 아이에게 화를 내고, 

    뒤돌아서서 ‘나는 몹쓸 부모’라며 한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몇 번 씩이나. 

    그럴 때마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마음’을 다루는 책을 한 권씩 샀다. 그게 모두 8권이니, 지금까지 고비를 여덟 번 건넜다는 말이 되겠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며칠 전에도 아빠를 보자마자 ‘그네’(라고 쓰고 사실을 아빠가 16kg가 넘는 아이를 들어 흔들어 드리는 중노동 되시겠다)를 태워달라고 떼를 쓰다 결국 울음이 터졌다. 

    겨우 달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밖에서 그네를 더 타고 들어오고 싶었는데, 

    날이 어두워져 할머니가 들어가자고 하니 별 수 없이 꾹 참고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랬는데 아빠가 외면하니 눈물이 터져버린 것. 

    ‘아니 원래 그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손만 씻고 오면 태워준다고 했는데 굳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 아이의 마음은 복잡하고 희한하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은 더 희한하다. 

    우리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아이를 어떤 단어로 규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다양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두루두루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세상 어떤 공부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누구보다 우리 아이를 위해 한 번만 더 생각하고,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너를 바라봐야겠다고 다짐한다. 










    2023.04.21

  • 더블하트 러브레터
    Vol.4 우리에게도 백일의 기적은 찾아올까




    금동맘 작가의 <우리에게도 백일의 기적은 찾아올까>

     

     

    일주일에 한 번 미팅하는 협력사 남직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첫 아이 탄생 소식을 전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손뼉 치며 온 마음으로 그를 축하했고, 그는 처음으로 함박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다음 주 회의실에 들어오는 그의 얼굴은 조금 칙칙해져 있었다. 게다가 주를 거듭할수록 야위어가기까지 했다. 

    그가 하는 말은 항상 같았다. “아이는 정말 예쁜데 잠을 못 자서 죽겠다”는 거였다. 

    친구들 사이에 ‘잠순이’로 통할만큼 잠 욕심이 많은 나로선 그 고문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덜컥 겁이 났다. 

     

    그로부터 1년 후, 우리 집에도 수면 환경을 엉망으로 만들 새 식구가 등장했다. 듣던 대로였다. 

    이 녀석에겐 낮과 밤의 경계 따윈 없었다. 오히려 밤에 더 활기차고 신나 보이기까지 했다. 

    자면서도 어찌나 몸을 비틀고 힘을 주는지 끙끙거리는 소리가 신경 쓰여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미리 낮잠을 자두지 못한 날엔 수유하며 졸기 일쑤였다. 

    어떤 조사에서 신생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밤에 8시간 이상 쭉 잘 수 있다면 얼마를 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참여자들은 ‘100달러 이상’이라는 답이 절반 이상 제출했다고. 누군가 헤드뱅잉을 하는 내 앞에 나타나 

    “아이는 내게 맡기고 푹 자”라고 한다면 선뜻 지갑에서 10만 원을 꺼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서 가장 자주 마주한 키워드는 ‘백일의 기적’이었다. 

    백일의 기적이란 아기들이 생후 100일을 기점으로 밤새 통잠을 자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100일 동안 고생한 모든 이들 앞에 홍해가 갈라지듯 기적적인 그 밤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적은 기적일 뿐이었다. 매일 같이 귓가를 파고드는 칭얼거림은 처음으로 아기에게 야속함이라는 감정까지 싹트게 했다.

     

    더 괴로운 건 따로 있었다. 아이를 잘못된 방식으로 돌보고 있다고 단죄하는 듯한 주변의 간섭과 정보들이었다. 

    재우는 방식부터 낮잠 시간, 수유 양, 분유와 기저귀 종류까지 바꿀 수 있는 건 다 바꿔봤다.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탁월한 방법은 없었다. 드디어 기적이 찾아왔나 싶다가도 다시 보채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이의 아랫잇몸을 자세히 살펴보니 빨갛게 부어있었다. 이앓이였다. 또 어떤 날은 아이가 뒤집기에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줄을 모른다는 것. 그렇게 되짚기를 하기까지 한 달간 불침번을 섰다. 

     

    그때는 아이가 얼른 커 주기만을 바랐다. 신생아 때는 백일의 기적을 기다렸고, 백일엔 돌을, 돌에는 두 돌을 기다렸다. 

    하지만 두 돌이 지난 지금은 그 어떤 기적도 기다리지 않는다. 여전히 새벽에 한두 번씩 깨서 칭얼대고, 

    낮잠 재우기는 하늘의 별 따기지만 그런데도 천천히 컸으면 한다. 

    그렇게 얼마간 고군분투한 아이는 콩나물처럼 쑥 자라 이전과는 꽤 다른 모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난 계절의 사진만 봐도 지금과 너무 다르다. 그래서 더 이상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의 모습도, 육아의 모습도 수없이 바뀌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아이가 밤잠에든 후 찾아오는 ‘육퇴의 기적’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잠든 아이의 얼굴에는 ‘예쁘다’는 말로 담기지 않는 반짝이는 우주가 있다. 

    매일 밤 우리만의 우주를 만지고 쓰다듬으며 오늘 하루 아이로부터 받은 행복들을 곱씹고, 

    더 멋진 엄마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아로새긴다.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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